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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쓰고

백범일지

by 호빵맨 2007.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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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白凡) 김구(金九)

『백정(白丁), 범부(凡夫) 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램으로 호를 백범으로
 
 하신 민족지도자

『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달라』 며 기도하신

백범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 백범일지

백범일지 출간사중 이런말이 있다...
내가 이책을 발행하는 데 동의한 것은 내가 잘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못난 한 사람이 민족의 한 분자로 살아간 기록으로서이다. '백범'이라는 내 호가 이것을 의미한다.
내가 만일 민족독립운동에 조금이라도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만한 것은 대한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것이다. 
나는 우리 젊은 남녀들 속에서 참으로 크고 훌룡한 애국자와, 엄청나게 빛나는 일을 하는 큰 인물이 쏟아져 나오기를 믿는다.
동시에 그 보다도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은 저마다 이 나라를 제 나라로 알고 평생 이 나라를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니, 나는 이러한 뜻을 가진 동포에게 이 '범인의 자서전'을 보내는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여 백범일지의 가장 앞에있는 출간사를 읽고, 그순간부터 그냥 막연히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가 아닌 존경하는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님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민족을 위하고 후손을 위하는 귀한 말들 뿐이다.

김구선생의 업적을 나름대로 큰 테두리로 나누어 보면...


먼저 민족 계몽과 교육이다.

김구선생님 께서는 어려서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닳고, 문중의 친척 아이들을 가르키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상해에서 임시정부 일을하시지 전까지, 우리 민족의 교육사업에 전념하셨다.

서양문물역시 배척함이 없이 우리 민족이 발전함에 필요하다 생각하시어, 가장존경하는 스승

고능선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민족적 자존감 고취이다.

왜의 명성황후 시해 소식을 들은 김구 선생께서는 여행중 치하포에서 일본인 쓰치다를 죽이시고,

살인을 행한 이유와 자신이 누구인지를 붙여놓고 홀연히 집으로가 기다렸다.

그 사건으로 해주옥에 투옥되어 신문 받는 중에도 도리어 신문하는 이를 크게 호통치셨다.

결국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국모의 복수를 하였다는 말을 들은 고종께서 살려주셨다.


마지막은 역시 민족의 독립을위해 인생을 받치신 애국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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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과 윤봉길의사

상해 임시정부시절, 처음으로 청한 일은

출간사에 나온것같이 정부청사의

문지기이다.

청하기는 문지기를 청하였지만, 경무국장을
 
시작으로 임시정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셨다.

청사의 임대료도 내지 못할만큼 궁핍한

재정난과 주변국의 임시정부로서의 인정이 없어

하나, 둘 임시정부를 떠날때까지

김구 선생께서는 임시정부를 지키셨다.

가장 우려울때, 임시정부의 수장이 되시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해외의 동포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으시고, 역사적인

이봉창의사의 일황 수류탄 투척과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폭탄거사를 주도하시어 쾌거를 거두셨다.

그후, 임시정부는 독립군의 창설에까지 이르는데, 그 와중에 일본이 항복하였다.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 민족에 봄이찾아오는듯 했지만, 38선이라는 줄이 우리 민족을 반으로 나누어

놓았고, 김구 선생께서는 그때부터 민족스스로 통일된 국가를 이루기위해 남은 평생을 보내셨다.


우리나라 국민중 백범 김구 선생님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구선생께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셨고, 어떤 사상으로 민족을 이끌고 지도하셨는지, 그많은 독립운동가들중 왜

가장 존경 받으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자유를 누릴수 있게되었는지, 우리 후손을 위해

어떻게 살야할지 모든 우리 동포와 국민들이 한번씩 꼭 읽어봐야할 필독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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